수트 무비(Suit Movie)

이 글은 크몽 재능인, perot님이 원고를 기고하셨습니다.

사무엘 L.잭슨 주연의 영화 ‘샤프트(Shaft, 1999)’에서는 한 악당이 주인공 샤프트를 밀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기분이 나빠진 샤프트가 소리치는 한 마디!

“내 아르마니에 함부로 손대지 마!”

그렇다. 그가 입은 옷은 구겐하임 미술관에 상당한 기부금을 내고 전시 공간 대부분을 자신의 작품(?)들로 채워 넣은 아르마니의 것이었다.

  • 깔끔한 수트,
  • 빳빳한 와이셔츠의 칼라,
  • 은은한 컬러의 넥타이,
  • 자켓 소매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반짝이는 커프스 링크…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이 이러한 모습을 하고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자 영화, OO 느와르 등으로 불리면서, 다소 딱딱하면서도 차가운 분위기가 전반적인 영화의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들이다.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장르 속에서 이런 모습의 남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깔끔한 수트 차림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영화 속의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영화 장르를 수트 무비(Suit Movie)라는 하나의 또 다른 장르로 분류해서 보면, 수트 무비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몇 가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트 무비, 남성미를 찬양하다!

수트 무비는 남성적인 미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장르다. 수트라는 의상 자체가 남성의 미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거니와, 영화의 내용 또한 남성미를 부각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수트 무비라고 할 수 있는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대부(Mario Puzo’s The Godfather, 1972)”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남성들의 여러 모습들은 여성 못지않게 남성 또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

미국에 대부가 있다면 아시아에서는 바로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는 주윤발표 액션 영화가 있었다. 블랙 코디네이션에 선글라스, 그리고 이쑤시개를 물고 있는 홍콩 느와르에 표현된 주윤발은 남성미에 대한 찬양을 넘어, 폭력 미학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 일으키면서 수트 무비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잘 말해 주었다. 이러한 홍콩 느와르는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히트(Heat, 1995)”로 이어져, 선악의 대결 구도에서 보여지는 남성미를 극도의 차가움으로 표현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국내에서는 조폭 영화에서 주로 수트 무비 스타일이 다루어지고 있지만, 헐리우드나 홍콩은 수트 무비 스타일을 통해서, 수트 무비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와 아름다운 남성에 대한 다양한 영상미들로 가득 채우면서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수트 무비의 남성미에 대한 찬양의 중심에는 많은 디자이너가 서 있다. 수트 무비는 남성복 디자이너의 수트 아이템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남성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다.

수트 무비, 디자이너를 만나다!

서두에 예를 든 영화 샤프트가 아니더라도 많은 수트 무비에는 디자이너의 수트들이 등장한다. 화려한 캐스팅이 압권인 영화 “언터처블(The Untouchable, 1987)”은 디자이너 아르마니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게 만든 수트 무비의 대표작이다. 깔끔한 수트와 트렌치 코드, 그리고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으로 악과 대결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수트 무비 스타일은 극에 달했으며, 그와 함께 아르마니의 수트 또한 크게 빛났다.

untouchables
[Figure 1] 영화 언터처블의 포스터
깔끔한 아르마니의 수트가 크게 돋보인 영화. 이는 곧 아르마니가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으며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수트 무비는 스타일에 있어서 차별화되는 요소가 거의 없는 남성복 디자이너의 수트 아이템에 미묘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아르마니의 성공 이후 많은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헐리우드에 러브콜을 외치면서 수트 무비의 남성미를 자신의 수트 아이템에 부여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고 있다. 수트 무비 속에 그려진 남성미의 이미지가 곧 디자이너 브랜드의 이미지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트 무비에서 남성미의 아름다운 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수트가 필수적인 영화 소품이 되면서, 수트 무비와 디자이너 수트는 상호 보완적인 길을 걷게 된다.

수트 무비, 배우를 만들다!

수트 무비와 디자이너가 이처럼 필연적인 관계를 갖게 되면서 진정한 남성미를 가진 배우의 존재가 점점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부의 알 파치노와 007시리즈의 숀 코네리 등이 1대 수트 무비 배우라면,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2001)의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는 2대 수트 무비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수트 차림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며, 수트를 통해서 남성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이다. 수트 무비가 가진 남성미를 극대화하는 영상과 디자이너의 수트, 그리고 이 수트가 잘 어울리는 배우의 만남은 바로 진정한 수트 무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수트 무비의 중심에 선 배우들은 그 시대의 가장 닮고 싶은 남성상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즐기면서 진정한 남성미에 대한 표본이 되어 간다. 스타일리시(Stylish)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배우가 되며, 섹시(Sexy)한 남성,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 등을 가진 배우라는 평가를 받으며, 수트 무비의 진화와 함께 배우 또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수트 무비는 그 시대의 가장 남자다운 배우를 만들어 나가면서 그 기준을 제시하고, 메트로섹슈얼(Mertosexual)이라는 미명하에 점점 양성화되어 가고 있는 성에 대한 모호한 구분의 추세 속에서도 진정한 남성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면서 남성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트 무비는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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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영화 스내치의 등장 인물
유머러스한 시나리오와 다양한 색감의 브리티시 룩이 돋보이는 스타일이 특징인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 스내치는 수트 무비의 진화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예전의 수트 무비는 깔끔한 블랙 수트에 선글라스, 차가운 영상과 우수에 젖은 듯한 눈빛, 그리고 폭력 등이 주요 키워드였다면, 최근에는 그 트렌드가 다소 변하고 있다.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1999)”와 “스내치(Snatch, 2001)”에서 보여지는 브리티시 룩(British Look)의 다양한 컬러감과 소재감이 특징인 수트와 덥수룩한 수염, 유머러스한 미소와 눈빛,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다소 부담이 덜한 시나리오 등이 최근 수트 무비의 큰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트 무비의 진화와 함께 많은 남성복 디자이너의 수트 또한 브리티시 룩을 반영한 스타일이 많아지고 있으며, 그 시대의 남성상을 대표하는 배우의 기준 또한 수트가 잘 어울리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여유를 가진 인물로 변하고 있다.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Alfie, 2004)”에서 깔끔한 수트를 입고 많은 여성들과 유머러스한 잡담을 나누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주드 로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벌써 주드 로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등극했다!) 이처럼 수트 무비는 점점 진화하면서 이 시대의 가장 세련된 스타일과 가장 남성다운 미를 한 발 앞서서 뭇 남성들에게 새로운 미에 대한 기준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알피

[Figure 3]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의 포스터
현재 주드 로는 수트 무비의 가장 진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 배우이며,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이다.

 

한국형 수트 무비를 말한다!

한국의 영화 산업은 아주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영화 “쉬리(1998)”의 흥행 이후, 기적과도 같은 관객 동원 1,000만을 돌파한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3)” 등까지 정말로 쉬지 않고 달려 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많은 장르적인 시도와 한국 영화만의 독특한 색깔 찾기가 있었지만, 수트 무비에서는 그다지 큰 진화의 모습은 보여 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초기에는 주로 조폭 스타일이 수트 무비에 반영되면서 폭력물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자리잡기 시작하더니, 그 후 학원 폭력물에 조폭 스타일이 더해 지면서 전혀 엉뚱한 길로 나가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바로 “두사부일체(2001)”가 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트 무비의 성숙하지 못 한 모습은 한국의 남성미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며, 한국 영화의 발전에 있어서도 큰 방해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때 그사람

[Figure 4]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의 포스터
늘 같은 모습만 보여 주었던 한국의 대표적인 수트 무비 배우 한석규가 이번 영화 “그 때 그 사람들(2005년 2월 개봉 예정작)에서는 좀 더 진화된 모습으로 한국형 수트 무비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수트 무비는 그 시대의 남성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화의 집합체이다. 그러므로 헐리우드의 수트 무비는 바로 세계의 남성미를 하나의 서구화된 기준으로 묶어 가고 있는 남성 문화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헐리우드의 수트 무비를 접하면서 주인공의 직업, 주인공의 옷, 주인공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동경하고 닮아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점점 서구의 남성미에 대한 기준에 동화되어 간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남성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형 수트 무비의 존재는 한국적인 남성미가 존재하며, 남성의 아름다운 선을 살릴 수 있는 남성복 디자이너가 존재하며, 남성 문화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이 가질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이 바이오 산업과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 산업임을 봤을 때, 한국형 수트 무비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한국적인 남성 문화를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크몽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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