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브랜드

이 글은 크몽 재능인, perot님이 원고를 기고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번 주말에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에서부터 어디에 가서 뭘 먹을 건지, 그리고 어떤 옷을 살 것인지 등등…. 언제나 우리는 선택을 요구하는 삶 속에서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는 긴장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단순한 삶의 한 부분에 있어서의 선택이 아닌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선택이라고 하면 그 스트레스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간단한 예가 바로 핵무기의 사용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이러한 핵무기 사용에 대한 팽팽한 긴장감이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일조를 했다는 사실은 과연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선택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조금 더 현실성이 있는 한 브랜드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서 한 번 상상해 보자. 우리는 늘 브랜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며 경영이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브랜드를 다음 시즌에 확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이 브랜드를 죽이고 새로운 브랜드를 다시 런칭할 것인가 등등…. 이처럼 브랜드 경영에 있어서 선택의 강요는 국가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스트레스는 아니겠지만, 브랜드 하나로 먹고 살고 있는 브랜드에 관련된 수 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밥그릇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보다 현실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브랜드 경영에 있어서 선택의 문제는 경쟁 브랜드의 선택의 문제와 함께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마는 안타까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로 잘 알려진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의 딜레마는 앞서 말한 냉전 시대에 예방 전쟁을 줄기차게 주장했던 게임이론의 창시자 존 폰 노이만에 의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졌다. 존 폰 노이만이 주장한 예방 전쟁은 적국 소련이 먼저 핵무기로 미국, 더 나아가서 전세계를 초토화하기 전에 선제 공격으로 소련을 무력화 하자는 주장으로 그 당시 많은 극우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소련 또한 미국의 선제 공격에 대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두 국가 모두 섣불리 핵무기로 선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세계 평화를 유지했던 것이다.

위의 미국과 소련의 상황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적국의 핵무기 사용을 저지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핵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결국 이 핵무기를 섣불리 쓸 수 없는 선택의 딜레마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딜레마 조건이 하나 나온다. 바로 적국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소련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아마 선택의 딜레마 속에서 고민하는 일 없이 바로 선제 공격을 개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이 미국과 비슷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선제 공격을 하지 못했다. 결국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딜레마에 빠져 버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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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핵공격에 대한 선택의 딜레마
상대국이 자국과 비슷한 위력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선제 공격을 했을 경우 상대국이 반격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결국 공격을 안 할 수 밖에 없는 차선책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냉전 시대에 벌어졌다.

그럼 다시 브랜드 경영으로 돌아가 보자. 앞서 미국과 소련의 경우처럼 브랜드 경영에 있어서도 경쟁 브랜드의 가격이나 유통 등의 전략을 우리는 예전에 비해 더욱 빨리 알 수 있다. 이는 정보화 시대의 축복이자 브랜드 경영에 있어서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저주라고 할 수 있는데, 경쟁 브랜드가 세일을 하면 우리도 같이 세일 전략을 펴고 경쟁 브랜드가 브랜드 확장을 하면 우리 또한 브랜드 확장을 통해서 서로를 견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브랜드 경영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과연 “우리는 이러한 선택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 이전에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를 먼저 강요 받는다. 최근 저가 화장품 시장의 상황을 살펴 보자. 기존 미샤와 더페이스샵을 선두로 저가 화장품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업계 1위인 태평양의 입지가 위협받게 되었다. 게다가 업계 2위인 LG생활건강이 미샤에게 밀려나기 직전까지 몰리면서 태평양의 위기감은 더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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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2] 태평양의 저가 화장품 시장 진출에 대한 선택의 딜레마
태평양이 기존 가격 정책을 계속 유지한다면 저가 화장품 시장의 선도력이 상실될 것이며 저가 화장품 매장을 오픈하면 경쟁사와의 치열한 가격 경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태평양은 경쟁사와의 치열한 경쟁을 선택했다. 업계 1위의 힘을 보여 주려는 것인가?

결국 태평양은 위와 같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선택에는 “선택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저가 화장품 매장을 낼 것이냐, 아니면 지금의 현재의 가격 정책을 고수할 것이냐” 중에서 선택하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태평양은 기존 휴플레이스의 저가 브랜드 매장인 휴영을 오픈하면서 결국 저가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사실 태평양의 선택은 딜레마의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경쟁사가 저가 시장 진출이라는 선택을 먼저 한 상황에서 태평양은 단지 그 상황에 맞게 대처를 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평양이 저가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그 선택의 과정은 분명 딜레마였을 것이다.

그럼 조금 더 복잡한 상황에 대해서 알아 보자. 패션 브랜드에서 트렌드의 반영은 다음 시즌 브랜드의 생명을 좌우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는 다음 시즌 트렌드가 다 나와 있다. 매년 해외 컬렉션 등을 통해서 발표된 다음 시즌 트렌드에 대한 반영 여부를 언제나 패션 브랜드는 고민하게 된다. 이번 시즌의 예를 보자. 이번 2005년 S/S 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캐릭터 디자인이 난무했다. 복고와 키치의 트렌드를 대부분의 캐주얼 브랜드에서 반영했는데, 우리들이 어릴 때에 즐겨 봤던 만화 영화 주인공들이 티셔츠의 주인공으로 수없이 등장한 것이다. 베트맨에서부터 루니툰에 이르기까지…. 아래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 대부분의 캐주얼 브랜드들은 트렌드 반영을 통해서 만화 영화 캐릭터를 디자인 모티브로 사용했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이는 브랜드들의 담합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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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3] 패션 브랜드의 트렌드 반영에 대한 선택의 딜레마
대부분의 패션 브랜드들이 해외 컬렉션 등에서 발표한 트렌드를 반영함으로써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담합한 것처럼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번 시즌 캐주얼 브랜드들의 만화 영화 캐릭터 사용이다.

하지만 브랜드들의 담합이 말 그대로 효과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소비자가 외면해 버린다면 이는 정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시즌이 바로 소비자가 외면한 시기인데, 매장에는 만화 영화 주인공 티셔츠들이 넘쳐 나는데, 정작 주요 상권에서는 이러한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미니스커트 유행 이후 다시 미니스커트가 크게 유행할 것으로 예측해서 너도나도 미니스커트를 만들었는데(브랜드 담합), 결국 소비자들은 외면해서 크게 낭패를 봤던 그 상황이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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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4] 만화 영화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선택
이번 시즌 캐주얼 브랜드들의 만화 영화 캐릭터 차용에 대한 담합은 철저히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대부분의 캐주얼 브랜드들이 매출 하락에 허덕이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차피 딜레마 속에서 선택을 강요 당하게 되는 브랜드 경영에서 트렌드 반영이라는 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소비자들의 외면을 당한 것은 왜일까? 사실 딜레마에서의 선택은 게임 참가자가 합리적이라는 가정하에서 차선책이 최선의 선택임을 유명한 경제학자 존 내쉬는 증명한 바 있다. 이를 내쉬 규형이라고 하는데, 앞서 미국과 소련의 딜레마에서 서로 공격을 안 하기로 한 점, 태평양이 기존 중고가 시장에서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 상쇄를 각오하고서라도 차선책으로 저가 화장품 시장에 뛰어 든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캐주얼 브랜드들이 자신의 브랜드 색깔을 포기하고 트렌드 반영을 통해서 만화 영화 캐릭터를 사용한 점은 모두 게임 참가자들의 차선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만화 영화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바로 여기에 패션 브랜드들이 저지르는 아주 중대한 실수가 있다. 다음 시즌 트렌드에 대한 예측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행동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하게 해외 컬렉션을 통해서 발표된 트렌드만을 가지고 이를 반영할 것인가 아니면 반영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했지, 여기에 소비자라는 게임 참가자는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앞서 예를 든 태평양의 경우는 저가 화장품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것이 이미 증명된 상황이었다. 즉 브랜드들의 담합(저가 화장품 매장)이 소비자들에게 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캐주얼 브랜드들이 이번 시즌 만화 영화 캐릭터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미리 예측했을까?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담합에 참가한 것을 보면 답은 “아니오”다. 아마 소비자들의 반응이 미비할 것을 미리 예측했다면 절대로 담합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패션 브랜드들의 트렌드 반영에 있어서 아래의 표처럼 소비자들을 게임 참가자로 참가시킨 선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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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5] 다음 시즌 트렌드 반영에 앞서 소비자를 게임 참가자로 염두에 둔 선택의 과정
이러한 딜레마 속의 선택의 과정에서 내쉬의 균형점인 차선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음 시즌 소비자 행동에 대한 예측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소비자 행동에 대한 예측은 직감에 의존하든 리서치에 의존하든 브랜드 매니저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이처럼 소비자를 게임 참가자로 염두에 둔 선택의 문제가 먼저 해결이 되면 그 다음에 트렌드의 반영 정도를 해결하는 순서로 다음 시즌에 대한 브랜드 운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딜레마에 빠진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그 누구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뿐이다. 경제학자 내쉬가 증명한 균형점이 차선을 선택하는 것에 있음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하지만 브랜드 경영에 있어서 기존 의사 결정 과정을 거꾸로 해 보면 최선의 차선을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바로 여기에 딜레마에 빠진 브랜드를 구하는 딜레마 경영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크몽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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